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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EC결산] ④ ‘2천억달러 분할투자’로 관세협상 극적 타결
‘현금 5%’ 첫 목표와 거리 있지만 연 200억달러 상한 관철…일본보다 ‘선방’
자동차 관세 인하·’대만 수준’ 반도체 관세도 기대…불확실성 상당 부분 걷어내
한국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기회로 삼아 장기 교착 상태이던 한미 관세 협상 후속 협의를 극적으로 타결하는 데 성공했다.
총 3천500억달러(약 500조원)의 대미 투자 패키지 구체화 방안을 두고 치열한 협상이 이뤄진 끝에 최대 쟁점인 대미 현금 투자 규모를 2천억달러로 하되 연간 200억달러 상한선을 긋는 선에서 양국이 합의점을 찾았다.
7월 30일 개괄적인 한미 관세 협상 타결 때 우리 정부가 생각한 ‘5% 이내 현금 투자’와는 거리가 멀다. 그렇지만 비슷한 처지인 일본보다 ‘선방’한 측면이 있고, 통상 불확실성이 상당 부분 해소될 것으로 기대돼 한국 경제가 일단 큰 고비를 넘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 ‘노딜’ 예상 깬 극적 합의…김정관-러트닉 ‘핫라인’서 돌파구
한미 정부는 지난달 29일 경주 정상회담 계기에 한국의 3천500억달러 투자 패키지 중 2천억달러를 현금(지분) 투자로 하되, 연간 투자 상한을 최대 200억달러로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투자 방안에 합의했다.
한국의 직접 투자 규모는 지난 7월 30일 한미 관세 협상 타결 후 문서화를 위한 후속 협상 과정에서 최대 쟁점이었다.
한국 정부는 3천500억달러 중 5% 안에서 현금 투자를 하고 대부분을 보증으로 채우겠다는 입장을 당시 미국 측에 밝혔고 이는 비망록에도 반영됐다.
하지만 미국은 후속 협의 과정에서 일본과의 선행 합의를 내세워 ‘백지수표’ 식 투자 MOU에 서명하라고 요구하면서 협상은 교착 상태에 빠졌다.
이후 일본과 경제 규모 차이, 원화와 기축통화인 엔화의 위상 차이 등까지 고려했을 때 일본식 투자안을 받을 경우 한국 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가 급부상했다.
결국 정부는 ‘국익 극대화’ 차원의 합리적 대미 투자 패키지 구체화 방안을 찾겠다면서 사실상 ‘배수진’을 치고 협상에 임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외신 인터뷰를 통해 “(미국의 요구 조건을) 받아들였다면 탄핵당했을 것”이라며 레드라인을 쳤고, 결국 미국 측도 협상 판을 깨기보다는 한국의 주장을 일정 부분 수용해 일본과 합의에 없던 분할 투자안을 받는 쪽으로 돌아섰다.
그렇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임박 때까지 미국은 8년간 매해 250억달러씩 총 2천500억달러를 투자하라는 입장을 고수했고, 한국이 이에 난색을 보이면서 정부 안팎에서는 APEC 계기 관세 협상 성과 도출은 어렵다는 관측이 급부상했다.
통상 소식통들에 따르면 극적 돌파구는 김정관 관세 협상의 전면에 있던 산업통상부 장관과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 간의 ‘핫라인’을 통해 이뤄졌다.
트럼프 대통령을 수행한 러트닉 장관은 29일 미국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을 타고 일본에서 한국으로 이동하던 중 김 장관과 마지막 스마트폰 ‘문자 협상’을 벌였다고 한다.
김 장관이 “연 200억달러 이상은 불가”라는 최후통첩 문자를 보냈고, 러트닉 장관이 이를 받기로 하면서 당일 정상회담 개최 직전 돌연 타결 쪽으로 기류가 급변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3천500억달러의 대미 투자 패키지 중 2천억달러는 일본과 유사한 현금 투자 방식으로 하게 됐다. 나머지 1천500억달러는 한미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인 마스가(MASGA)에 할당됐다.
현금 투자 규모를 놓고 보면, 당초 우리 정부가 생각했던 수준과는 거리가 먼 것이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입장이 크게 반영됐다.
2천억달러(약 285조원)는 2026년도 예산안(728조원)의 약 40%에 달하는 수준이다. 정부는 외화자산 운용 수익 등을 활용해 순차적으로 충당한다는 계획이지만 장기적으로 정부 재정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 ‘마스가 투자 자율권’에 연간 200억달러 상한까지…”일본보다는 잘 했다”
그렇지만 총 5천500억달러의 ‘백지수표’를 내준 일본보다는 분할 투자를 포함해 여러 면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확보한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우선 일본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임기가 끝나는 2029년 1월까지 5천500억달러를 투자해야 한다. 한국은 1년에 최대 200억달러의 한도를 설정해 총 투자 기간에 별도의 제한을 두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한국은 3천500억달러 투자 패키지 중 2천억달러를 현금 투자로 하되 나머지 1천500억달러는 미국 조선 산업 부흥 프로젝트인 마스가(MASGA)에 별도로 할당하는 데 성공했다.
마스가 투자는 한국 주도로 진행된다. 한국 조선사의 직접 대미 직접투자(FDI)와 국내 공적 금융기관과 민간 은행의 보증 등까지 두루 가능한 구조로 집행될 예정이라고 대통령실은 설명한다.
한화그룹 필리조선소의 사례처럼 한국 조선사들이 이미 주도적으로 대미 투자 확대를 계획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 정부의 직접 부담이 되는 대미 투자 규모를 실질적으로 1천500억달러 줄였다고 볼 여지가 있다.
이를 제외하고도 투자처 선정, 투자 이익 배분 등과 관련해서도 한국 측의 입장이 추가로 수용돼 미일 투자 MOU에 없던 조건들이 추가됐다.
투자 MOU에는 ‘원리금 회수가 보장되는 상업적 합리적인 프로젝트만 추진한다’는 내용을 명시하기로 했다. 프로젝트별 투자 과정에서 한·일 기업의 ‘우선 참여권’도 원칙적으로 보장하기로 했다. 이에 한일 정부의 부담과는 별개로 양국 기업들이 미국의 한일에서 확보한 자금을 활용해 전략적으로 일으키려는 산업 부문에서 대규모 수주 기회를 찾을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다.
실제로 미국은 최근 발표한 일본과의 투자 팩트 시트에서 웨스팅하우스, GE 베로나 히타치 등 기업을 중심으로 대형 원전, SMR, 기타 발전소, 변전소와 송전망 등 전력 계통 건설에 총 5천500억달러 중 절반이 훨씬 넘는 3천320억달러를 투자한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무엇보다 통상 전문가들은 한미 관세 협상 마무리가 자유무역을 기반으로 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시대의 공식적인 종언을 의미하지만, 미국 주도의 자국 우선주의 무역 질서가 ‘뉴노멀’이 된 상황에서 한국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을 상당 부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한미 관세 협상 합의가 최종 결정되면 당장 경쟁 상대인 일본, EU보다 지연되던 자동차 관세 인하(25→15%)가 가시권에 들게 되고, 우리나라 최대 수출품인 반도체 관세도 경쟁 상대인 대만보다는 불리하지는 않게 된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대미 투자 금액을 1년 200억달러로 낮춘 것은 부담을 크게 줄인 것이어서 전반적으로 상당히 괜찮은 타결로 일본과 비교해 고무적”이라며 “미국이 한미 FTA를 일방적으로 파기한 것이어서 아쉬움이 있지만 트럼프 시대에 우리가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규 차대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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