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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투자 백지 수표” vs 한 “비자확대”…복잡해진 한미관세 후속 협상
일본 수용 조건, 한국에도 요구…3천500억달러 투자 이견에 교착 국면
사과 등 농산물 ‘비관세 장벽 합리화’ 시간표도 요구…李 “미국투자 망설일 수밖에”
한미 양국이 7월 말 타결한 관세 협상 후속 협의에 본격적으로 나섰지만 핵심인 3천500억달러(약 485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 패키지 구체화 방안을 놓고 견해차가 커 논의가 교착 상태다.
미국은 일본처럼 사실상 ‘투자 백지 수표’를 달라는 입장이지만, 보증 중심의 투자 지원을 선호하는 한국 정부는 이런 방식은 수용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게다가 미국에서 우리 국민 300여명이 불법 체류 단속으로 구금된 사태를 계기로 정부는 원활한 투자 이행을 위해서라도 오랫동안 진척이 없던 비자 문제 해결이 꼭 필요하다고 강하게 요구하고 나서 협상 지형이 한층 복잡해지는 모습이다.
11일 정부 소식통들에 따르면 한미 양국은 지난 8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관세 협상 타결 결과를 문서화하는 등의 후속 조치를 위한 실무 협의를 진행했다.
실무 협의에서 양국은 한국이 약속한 대미 투자 패키지를 어떻게 집행할 것인지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투자처와 규모를 결정할지, 투자 이익을 어떻게 배분할지 등을 놓고 서로 큰 입장차를 확인한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은 최근 일본과의 문서화 합의 전례를 들어 자국이 원하는 곳에,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방식으로 투자해달라면서 사실상 ‘백지수표’ 달라고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3천500억달러는 한국 작년 국내총생산(GDP)의 20%에 달하는 막대한 금액이다. 정부는 그간 직접 투자는 5% 정도로 하고, 나머지 대부분을 보증으로 채워 실질 부담을 낮추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었다.
투자 이익 귀속과 관련해서도 미국은 일본과 투자 업무협약(MOU) 합의대로 투자 이익의 최대 90%를 자국이 가져가는 것을 명문화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우리 측은 이런 조건은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10일 기자회견에서 “일본과 외환보유고도 차이가 있고 기축통화국도 아닌데 (투자) 구조를 어떻게 짜느냐 문제가 많다”며 “근본적으로 외환시장에 미칠 충격을 같이 고민하고 미국이 도와줄 수 있는 부분에 해답을 달라 (요구하고 있고) 그 문제에 와서 교착 상태에 있다”고 설명했다.
민감한 농산물 분야에서도 미국은 한국에 비관세 장벽 해소를 압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이 관세 협상 타결 때 ‘과채류 수입 위생 관련 양국 협력 강화’를 약속했으니 약속을 이행하라는 취지다.
미국은 특히 1993년 신청한 사과 검역이 20년 넘게 현재 8단계 중 2단계인 ‘수입 위험분석 절차 착수’에 머물러 있다는 점에 강한 불만을 제기하면서 한국이 구체적 ‘시간표’를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미일이 먼저 관세 협상 결과를 문서화하는 합의를 해 미국이 조만간 일본산 자동차 관세부터 15%로 인하할 예정이다. 이에 한국의 입장에서는 한미 관세 협상 타결 대상에 포함된 자동차 관세 이행 약속도 서둘러 받아내야 하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미국은 한국이 먼저 ‘행동’에 나서야 자동차 관세 인하에 나설 수 있다는 입장으로 알려져 자동차를 지렛대 삼아 후속 협의에서 한국을 압박하는 모양새다.
여기에 한국도 대규모 한국인 근로자 구금 사태를 계기로 지지부진한 비자 확대 문제 해소를 강하게 요구하고 나서면서 협상 국면은 복잡해졌다.
한미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가운데 김정관 산업장관은 11일 미국으로 출국해 돌파구를 찾기 위한 각료급 협상에 나섰다.
김 장관은 워싱턴 DC에서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 등을 만나 투자 의제를 중심으로 협의할 예정이다. 김 장관은 이번 계기에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와 관련해 비자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강하게 제기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 정부는 미국의 무리한 요구까지 수용할 수는 없다는 기본 입장을 밝히고 있어 김 장관의 방미 기간 일본식 투자 MOU 서명 등 급속한 논의 진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관측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대한민국 국익에 반하는 결정은 절대 하지 않는다. 합리성과 공정성을 벗어난 어떤 협상도 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 대통령은 비자 문제와 관련해서도 “현재 상태라면 미국 현지 직접 투자는 우리 기업들 입장에서는 매우 망설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강한 어조로 언급하기도 했다.
통상 당국자는 “(투자 패키지로 약속한) 3천500억달러를 지분투자 방식으로만 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며 “협의를 통해 해결의 실마리부터 찾아가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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